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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열린 작가 초청회를 기억합니다. 그때 진행자가 처음 던진 인사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원래 초청회에는 금천구의 이주민 노동자를 초대한 뒤 함께 인권에 관한 대화를 나눌 계획이었습니다. 이때 이주민 노동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낸 아이디어가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말입니다. 이주민이 초대에 응할 뿐인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능동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만으로 초대한 이와 초대받은 이가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초대하는 일과 초대 받는 일을 겹쳐볼 순 있습니다. 이를 테면 누군가를 초대하며 어느 날 내가 초대받는 상상을 하거나 어떤 이의 초대에 응하며 다른 날 내가 누구를 초대하는 약속을 할 수 있지요.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 때때로 우리는 이도저도 아닐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김안 시인의 '거의 모든 아침'은 이도저도 아닌 시입니다. 시인은 아침의 풍경을 묘사하며 거의 모든 아침이 당신이었다가 당신이 아니었다고 진술합니다. 시인은 언뜻 공평해보입니다. 거의 모든 아침을 당신이었다고 한 번, 당신이 아니었다고 한 번, 동등하게 언급하니까요. 하지만 희한하게 '거의 모든 아침'을 읽고 난 느낌은 당신이 사라진 쓸쓸함보다는 아침 안개의 신비로움에 가깝습니다. 희뿌연 아침 안개 너머에 어쩐지 당신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왜냐하면 당신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아닐 것이다, 라고 말한 일은 모두 당신을 말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두 당신이었다는 아늑함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에서 옵니다. 이를 테면 텅 빈 백지장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가볍고 둥근 돌'이 '하얀 발 위'에 '모래'가 되어 사라지는 아침. 거의 모든 아침은 당신이 아니겠지만 반드시 당신일 수 있습니다.

문득 텅 빈 카페가 떠오릅니다. 노는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가며 제각각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다가 돌아갑니다. 하나하나의 일들은 서로 얽히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이 공간에 무수한 이야기가 생겨났다가 사그라질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어느 때 카페가 텅 비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녁 열 시면 카페를 마감하고 불을 끈 뒤 문을 잠급니다. 그때의 캄캄하고 조용한 카페는 어느 한 낮에 시끄러운 카페와 같은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페의 침묵과 카페의 요란함은 언제든 겹쳐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카페가 이도저도 아니어서 우린 언제든 소파에 기대 앉아 시집을 읽든 일기를 쓰든 사랑하는 이와 수다를 떨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외로움은 이도저도 아닐 때 사라져버리곤 합니다. 이도저도 아니려는 일은 별 다른 노력을 요하지 않습니다. 혼자 남는 일이 벅차서 절실히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내가 할 일은 당신을 옆에 두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단지 그 생각만으로 당신은 반드시 존재할 테니까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 채' 방황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세상이 헛된 것들뿐이라면 차라리 그 헛됨을 사랑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헛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시다. 거의 모든 아침이 당신이었다가 당신이 아니었다는 하나마나한 실없는 이야기. 그 쓸모없음이 결국 당신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거의 모든 아침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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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자리’는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소소한 생각을 나눕니다.
* ‘읽는자리’가 소개하는 모든 책은 노는카페 자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글 : 조윤기
* 사진 : 노는카페 자리에서 열린 작가 초청회, '아워 홈파티 위드 박채란'